이외수 4

단어채집

그대의 생각이나 마음을 글로 전달하고 싶은데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안타까움으로 벽에 머리를 짓찧어보지만 머리만 아플 뿐 부족한 어휘력이 보충되지는 않는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대부분 글쓰기를 포기해 버린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라, 비결이 있다. 먼저 자기 몸에서 적절한 단어를 찾아보자. 반드시,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가급적이면 생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머리 - 대가리, 대갈통, 대갈빡, 골, 뇌, 대뇌, 소뇌, 작은골, 큰골, 전두엽, 후두엽, 대뇌피질, 꿈, 정수리, 백회, 가마, 가르마 등(생략) 머리에 속한 관계어 - 모자, 왕관, 가체, 가발, 어여머리, 고깔모자, 중절모, 벙거지, 밀짚모자, 야구모, 갓, 투구, 털모자, 베레모 등(생략) 얼굴 - 낯짝, 주름살, ..

'언어의 묘미'의 예, 바다의 일출 - 이외수 편

도시를 벗어나니 곧 차창 밖으로 바다가 내다보였다. "아!" 하고 감탄하면서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것은 일찍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거대하고 충격적인 괴물이었다. 시커먼 등 비늘을 번들거리며 새벽 미명 속에 가로누워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꼬리인지 분간할 수 조차 없을 정도였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면서 그 괴물은 차츰 형태를 자세히 드러내기 시작했고 나는 그야말로 광대무변이라는 것을 피부로 직접 실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일출이고 뭐고 우선 생전 처음 보는 바다의 모습에 매료되어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이게 바다로구나, 이게 바다로구나, 마음 속으로 자꾸 그렇게만 되뇌고 있었다. 하늘이 서서히 붉어지고 있었다. 하늘의 빛깔에 따라 바다..

'언어의 묘미'의 예 - 이외수 편

O 때때로 바람의 완강한 팔뚝에 머리채를 움켜잡힌 채 한 줄로 서서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버티고 있는 가로수들, 이따금 날개를 접질리운 새들처럼 휴지들이 높이 솟구쳤다간 곤두박질을 치고 있었다. O 내 잠의 막은 언제나 얇고도 희미해서 현실과 잠사이에 가로놓인 한 장의 미농지 같았다. 비록 잠들어 있는 상태라 해도 항시 잠 바깥에 있는 것들이 막연하게 잠 속에 비쳐 들어와 어른거리곤 했다. O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한없이 풍성하게 부풀어올라 햇빛 속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새로 따낸 목화송이를 잘 손질해서 하늘에 가득가득 쌓아놓은 것 같았다. 나는 그 푹신한 곳 깊숙이 뛰어들어 끝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O 비는 아주 지리한 소리로 땅을 적시고 있었다. 영원히 그 템포를 잃지 않고 지리하게지리하..

언어의 동작으로 소설 쓰기

소설이란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하는가. 나는 전혀 모르겠다. 옛날에 써놓았던 것들은 모두 태워버렸다. 모두 남의 흉내가 아니면 내 겉멋 들린 관념의 유희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야기만으로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언어와의 치열한 투쟁 끝에 얻어낸 자기만의 실로써 자기만의 무늬를 놓아 비단을 짜고 그것을 정교하게 바느질해서 인간에게 입혀놓았을 때, 반드시 그 인간이 어떤 의미로든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나 기구한 운명 따위야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 이상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한 줄의 시, 한 악장의 심포니, 또는 한 폭의 그림따위들은 결단코 설명되어 지거나 해석되어서는 안 되며 다만 느끼어지는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