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처마 밑이었는데 계집아이 하나가 벽 쪽에 등을 바싹 붙이고 앉아 있었다. 낙수에 패여 땅이 움푹한 곳에 괴다가 흐르곤 하는 빗물에 연방 생기고 꺼지고 하며 흐름을 따라가는 거품을 계집아이는 손가락 끝으로 지우고, 지우곤 하는 것이다. 귀밑머리를 쫑쫑 땋아 뒷머리와 한 묶음이 된 노르스름한 머리털이 축축이 젖어 있다. 계집아이는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눈을 들다가 어른의 구둣발을 보고 차츰차츰 고개를 치올린다. 뉘한테 야단을 맞았는지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남아 있다. "옥아?" "......." "뭘 하고 있니." "아주방이." "오냐." "어째 내 이름으 알지비?" 길상은 빙그레 웃는다. "옥이는 아주방일 모르겠어?" "응."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눈치다. 하기는 그때 옥이 눈에는 먹을 것 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