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이 3

1부 5편 떠나는 자, 남는 자

행랑 쪽 모퉁이로 길상이 급하게 뛰어간다. 봉순이도 급히 걸어가고 김서방 댁도 엉기정엉기정 따라간다. 수동이 거처방에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수동이는 눈을 뜬 채 죽어있다. 조준구와 홍 씨는 속이 후련해지며 희희낙락이다. 불리해지는 현실 가운데 서희는 포악스럽고 의심이 많아지고 있다. 반면, 제 나이를 넘어선 명석함으로 사태를 가늠하는 냉정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봉순이는 길상을 깊이 사모하지만 길상은 봉순이를 피하는 것이 완연했다. 한편, 봉순이는 다른 꿈을 좇고 있다. 평생을 비단옷에 분단장하고 노래 부르며 사는 세상, 그곳으로 끌려간다. 한 번은 길상이 니 겉은 화냥기 있는 가씨나는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길상이는 후회했지만, 봉순이한테 깊은 상처,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주게 되었다. ..

1부 4편 역병과 흉년

나귀에서 내린 조준구는 뻣뻣하게 힘을 주며 목을 돌려 돌아본다. 뒤따르던 초라한 가마 두 틀이 멋는다. 가마 속에서 나온 여인은 삼십오륙 세쯤 돼 보이는 조준구의 부인 홍 씨였다. 안 오겠다는 것을 감언이설로 얼러가며 여기까지 데려왔다. 다른 가마에서는 사내아이가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데 창백한 얼굴에 눈은 무섭게 큰 꼽추였다. 조준구는 윤 씨 부인에게 생계가 막막하여 내려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윤 씨 부인은 뒤채에 머물게 한다. 이 무렵 김서방은 각 처에 있는 최참판댁 농토를 돌아본다. 올해 수확을 예상하기 위해서다. 소나기를 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햇볕은 쏟아지고 별안간 김서방 속이 울렁거린다. 마지막 행선지 용수골을 떠날 때는 속이 뒤집힐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최참판댁에 당도한 것은 밤이 이슥했을 때..

1부 3편 종말과 발아

지리산으로 되돌아온 최치수는 달포 가량 산속을 헤매어 발 안 닿은 곳이 없었지만 구천이를 찾지 못했다. 구천이, 환이는 우관선사를 찾아 연곡사로 갔다. 무서움에 질린 별당아씨는 거의 발광 상태에 있었다. 최치수는 몇 차례 더 산에 갔다. 처음 흘러나오는 구천이에 대한 얘기는 시일이 지나자, 누구에게서도 들려오지 않고 사그라들었다. 강포수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최치수에게 귀녀를 달라 사정한다. 이튿날, 일행은 사냥에 나서는데, 강포수는 말이 없고 휘청거린다. 노루를 사냥하려는 와중에 소 만한 산돼지가 시야에 들어오고, 총을 쏘았으나 선불이 돼버린다. 산돼지는 방향을 돌려 달려오는데 비명이 나고 수동이의 찢긴 바지 사이에서 분수같이 피가 치솟고 있었다. 강포수는 수동이 부상당한 일보다 명포수인 그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