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돈 2

3부 3편 태동기

기차가 용산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의돈은 신문으로 얼굴을 덮고 코를 골고 있다. 대학생 차림의 청년이 흔들어 깨운다. '용산입니다, 형님' 선우일의 동생, 선우신이다. '개새끼들!' 서의돈은 눈에 핏발이 서서 시뻘겋고 험했다. 동경에 머물러 있던 선우신에게 서의돈이 노무자 꼴로 불쑥 찾아왔었다. 이삼 개월 신세를 져야겠다면서. 한데 며칠이 안 되어 관동대지진이 발생했다. 생지옥. 유언비어에 선동된 군중이 닥치는 대로 조선인을 참살했다. 유언비어의 근원은 일본의 위정자들이었다. 오천이 넘는 조선인들의 목숨 따위, 그들에게는 빈대로 보였을지 모른다. '신상, 신상!' 서울역에 내린 선우신을 안경 쓴 사내가 급히 불러댔다. 그의 뒤에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주춤거리듯 여자가 따라온다. 오가타 지로다. 여자는..

2부 4편 용정촌과 서울

들어서 이미 알고 있는 터였지만 용정촌 역두에서부터 최서희의 콧김이 세다는 것을 혜관과 기화는 실감하며 걸음을 내딛는다. 혜관 뒤를 조르르 따라가는 기화는 불안전해 보인다. 기화는 오소소 떨며 한기를 느끼듯 마음이 추운 것이다. 혜관과 기화를 별채에 안내하라 일러놓고 서희는 생각에 빠져든다. 봉순아! 부르며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서희는 그리운 정을 손아귀 속에서 뭉개버린다. 확고부동한 권위의식이 잠시 동안 거칠었던 숨결을 잠재워준다. '하인과 혼인을 했다 해서 최서희가 아닌 것은 아니야. 나는 최서희다! 최참판댁 유일무이한 핏줄이다!' 권위의식의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그것은 서희의 불도 살라 먹으려는 무서운 집념이다. '오래간만이군, 봉순이.' '애기씨!' 서희의 손은 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