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_산방한담 2

'없는 시간' 살아 보기

'시간 없이' 살고 있다. 출근길 발걸음은 시간 없이 살고 있음을 직설적으로 보여 준다. 앞선 사람이 조금이라도 천천히 걸으면 '길막'의 한숨을 내뱉는다. 계단을 오를 때면 숨이 차오른다. 숨이 차오름을 느끼면서도 발걸음은 늦추어지지 않는다. 지하철이 도착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되뇌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종착에서의 안도감은 회색빛 감정을 일으킨다. 걸음이 빨라진 것처럼 말도 빨라진다. 대화는 되받기에 급하고 말은 기-승-합-승의 연쇄작용을 통해 부풀어 오른다. 거대한 말 덩어리에 눌려 화자들은 갑갑해하는 모양새다. 심지어 책을 읽는 눈동자의 움직임도 빨라진다. 기계적인 이해의 방식으로 책은 읽힌다. 이제 독서는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달음질하는 경주가 된다. 종착지에서 서둘렀다는 아쉬움이 일어나지만 되돌이키..

조각글쓰기 2023.01.06

법정스님의 노화에 대한 단상

한 해가 또 뉘엿뉘엿 기울고 있다. 몇 해 전 섣달 그믐날의 그 체험이 되살아난다. 그날의 일과를 마치고 자리에 누워 눈을 붙이려고 하다가, 문득 '내 나이가 올해 몇이더라?' 하는 생각에 미쳤다. 나이를 세거나 의식할 일이 없는 처지여서 새삼스런 물음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먹은 나이를 헤아리다가, '아니 그럼 내일모레면 50이 되게? 머지않아 60, 70?'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부질없이 살아버린 날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훨씬 많은 걸 뒤늦게 알고 내 생이 새삼스레 허무감으로 휘청거리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돌이켜지는 생각. 그래 사람이 만약 1백 년 2백 년을 산다고 해서 좋을게 뭔가. 그렇게 되면 사람이 얼마나 추하고 천해질 것인가. 수목은 오래될수록 늠름하고 기품이 있지만,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