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산 2

1부 3편 종말과 발아

지리산으로 되돌아온 최치수는 달포 가량 산속을 헤매어 발 안 닿은 곳이 없었지만 구천이를 찾지 못했다. 구천이, 환이는 우관선사를 찾아 연곡사로 갔다. 무서움에 질린 별당아씨는 거의 발광 상태에 있었다. 최치수는 몇 차례 더 산에 갔다. 처음 흘러나오는 구천이에 대한 얘기는 시일이 지나자, 누구에게서도 들려오지 않고 사그라들었다. 강포수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최치수에게 귀녀를 달라 사정한다. 이튿날, 일행은 사냥에 나서는데, 강포수는 말이 없고 휘청거린다. 노루를 사냥하려는 와중에 소 만한 산돼지가 시야에 들어오고, 총을 쏘았으나 선불이 돼버린다. 산돼지는 방향을 돌려 달려오는데 비명이 나고 수동이의 찢긴 바지 사이에서 분수같이 피가 치솟고 있었다. 강포수는 수동이 부상당한 일보다 명포수인 그가 처음으로..

1부 1편 어둠의 발소리

섬진강 평사리 최참판댁은 사대에 걸쳐 마을 가뭄에 치부를 일삼아 만석꾼이 되었다. 향민의 원한이 켜켜이 쌓여 최참판댁은 자식이 귀하다고 전해 내려온다. 1897년, 최참판댁의 주인은 최치수로 병약하고 날카로운 인물이다. 서희는 앙증스러운 다섯 살 배기 최치수의 외동딸이다. 삼 년 전 추운 겨울날, 스무한두 살쯤 되어 보이는 남루하지만 준수한 용모의 젊은 사내가 찾아왔다. 성이 김이라고만 얘기하는 젊은 사내는 뜻 밖에 머슴살이를 부탁했고, 최치수의 모친, 윤 씨 부인의 허락으로 최참판댁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름은 구천이 되었다. 하루 해가 저물어 마름들이 대부분 돌아가면 하인들은 뒷정리를 하고 열쇠꾸러미가 안방으로 들어가면 불이 하나 둘 꺼지면서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해진다. 돌이와 삼수는 구천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