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책임투자(Sociallly Responsible Investment, SRI)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이하 'ESG')를 고려한 투자 활동을 의미한다. 투자 활동을 할 때 ESG를 고려하는 동기는 다양하다. 첫째, 경제적 동기에서 ESG를 고려할 수 있다. 투자자는 ESG를 통해 환경리스크 같이 재무적 손실을 낳을 수 있는 리스크를 피할 수 있고 좋은 투자 기회를 선점하여 고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 둘째, 윤리적 동기가 있다.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가 상당한 수익을 낼 가능성이 있더라도 ESG 이슈를 이유로 투자를 자제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담배, 술, 무기 산업에 투자하지 않는 것, 산업 자체에 문제는 없지만, 인권이나 환경 침해적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셋째, 자선적 관점에서 ESG를 고려할 수 있다. 투자자가 자신의 경제적 이익보다 사회의 편익 증가를 중시하는 경우이다. 사회적으로 필요하면서 위험이 높은 벤처기업에 투자한다거나, 낙후 지역의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는 것이다.
아치 B. 캐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개념을 정립한 학자로, CSR을 경제적 책임,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 자선적 책임의 네 가지로 구성했다. 이 네 가지 책임을 상하 위계적으로 보고 'CSR 피라미드'로 표현했다.
(1) 경제적 책임은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책임으로 네 가지 책임 중 기초가 된다.
(2) 법적 책임은 기업의 경제활동을 제도화된 법적 틀 내에 머물도록 할 책임이다.
(3) 윤리적 책임은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사회 구성원에 의해서 기대되거나 금지되는 행동과 관행을 따를 책임이다.
(4) 자선적 책임은 기업이 훌륭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의 기대에 따를 책임으로 최상위에 있다.
캐롤은 이러한 네 요소가 동시에 충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계가 있는 네 가지 모두를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 주장은 모순 같아 보인다. 기업의 '이윤에 대한 관심'과 '사회에 대한 관심' 사이의 긴장을 갈등으로 인식하지 말고 동시에 충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캐롤은 거듭 주장했다. 캐롤의 주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비평된다. 첫째, 여러 책임 사이의 모순과 갈등은 '노력'으로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책임들 사이에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원칙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둘째, 캐롤의 피라미드가 제시한 위계질서는 수용되기 어렵다. 피라미드는 경제적 책임을 가장 아래 배치하여 다른 책임보다 중시하고 있는데, 이는 올바른 CSR모델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법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책임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캐롤의 CSR 피라미드를 다소 변형하여 규범적 차원에서 수용할 만한 대안을 만들어 보면 아래 표와 같다.
표는 책임들의 위계를 나타내는데, 아래로 갈수록 책임이 무거워진다. 즉, 여러 책임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아래의 책임이 먼저 추구되어야 한다.
A 모델은 법을 준수한다는 전제하에 경제적 책임의 추구를 윤리적*자선적 책임보다 앞세우는 CSR 모델이다. 이 모델에서 기업이 ESG를 고려하는 것은 경제적 동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윤 극대화라는 전통적인 기업 목적을 따른다. CSR의 사업적 이유나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 CSV)'을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서 사회적 가치는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추구되지는 않는다. 이 모델을 CSR 모델의 하나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 모델하에서 기업은 실제로는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겉으로만 사회적 가치를 표방하는 것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CSR을 단기적인 약탈적 기업활동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ESG를 고려한 장기적 이윤추구를 올바른 CSR의 전형으로 본다면 A 모델은 유의미한 규범적 CSR 모델이 될 수 있다.
B 모델은 기업이라면 법률 이외에도 반드시 준수해야 할 어떤 강한 윤리적 규범이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이 윤리적 규범은 수익과 무관하게 준수되어야 하는 규범이다.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법 위반은 아니지만 사업 활동이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서 ESG를 고려한다는 것은 재무적 성과가 아니라 다른 이해관계자의 사회*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담배산업에 뛰어들지 여부, 강제노동을 이용하여 생산된 원재료를 사용해야 할지 여부를 경제적 기준이 아니라 윤리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다만, B 모델의 윤리적 기준은 소극적이다. 기업이 넘지 말아야 할 금도를 제시하는 정도다. 이 모델에서 기업은 도덕적으로 고매한 기업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비난받지 않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
C 모델은 기업활동이 사회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이 모델하에서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존재인 동시에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조직이다. 기업은 경제적 책임을 희생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사회적 선을 실천할 의무를 지닌다.
이상 세 가지 모델을 사회책임투자에 적용하면 서로 다른 형태의 사회책임투자 모델들이 도출된다. 각각의 모델은 서로 다른 투자원칙을 제공하기 때문에 투자자는 어느 모델을 적용하여 투자할지 선택해야 한다. A 모델에서 사회책임투자는 장기적인 주주가치를 창출하는 투자로 정의할 수 있다. 장기투자가 사회에 이익을 준다면 그것은 장기투자의 부산물이며 우연적인 것이다. B 모델에서 투자자는 합법적이더라도 윤리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행위를 하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한다. 기업은 ESG를 고려한 장기적 투자를 할 수 있으며, 자선적 투자는 선택적이다. 자선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받지 않는다. C 모델은 투자자가 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에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 자선적 투자 활동을 하지 않으면 비난의 대상이 된다. C 모델하에서는 사회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투자처를 찾아내는 것이 성공적인 사회책임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국제사회에서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생겨났는데, 그것은 바로 유엔과 OECD를 중심으로 제시된 대안이다. 하나는 유엔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인권경영(business and human rights, BHR)' 움직임이고, 다른 하나는 OECD가 주도하는 '사회책임경영(responsible business conduct, RBC)' 움직임이다.
2011년에 발표된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이하 '이행원칙')은 투자자가 인권침해를 초래하거나 기여해서는 안 되고 사업관계로 연결되어도 안 된다고 얘기한다. 투자자는 투자 결정을 함에 있어 인권침해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지 사전 예방적인 인권실사를 해야 한다. 인권 요소를 고려하여 투자해야 한다. 이때 인권 요소는 선택적인 것이 아니고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적극적으로 인권의 보호와 충족을 도모할 의무는 부과하지 않고, 소극적인 의미에서 침해의 자제 의무만 부과한다. 위에서 검토한 사회책임투자 유형론에 비추어 보면, 이행원칙은 B 모델을 따르고 있다. 이행원칙은 ESG의 상당 부분을 포괄한다. ESG에서 S는 사실상 인권이고 환경문제(E)도 많은 경우 인권 문제로 환원할 수 있다. 이행원칙은 기업 내 최고의사결정기구의 역할, 인권경영 체제의 정립, 이해관계자의 참여, 보고 제도 등 지배구조의 대안적 원칙도 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행원칙은 인권뿐 아니라 ESG 전반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OECD가 다국적기업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책임경영'을 위해 제정한 행동 지침이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이다. 가이드라인은 많은 부분에서 이행원칙의 내용과 방법을 원용하고 있다. 투자자가 사회책임경영 이슈에서 부정적 영향을 미치거나 투자 사슬에서 이런 영향에 연결되어 있다면 가이드라인의 위반이며, 이에 따라 국내연락사무소(NCP)에 피소될 수 있다. 가이드라인의 사회책임경영 이슈란 투명성, 인권, 노사관계, 환경, 반부패, 소비자 이익, 과학기술, 경쟁, 세금 등이다. 사회책임경영 이슈는 ESG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 두 국제규범은 투자자가 투자결정을 할 때 거의 같은 내용의 ESG를 요구하는데, 이들이 권고하는 사회책임투자는 모두 최소주의적으로 이해된 B 모델이다. 오늘날 사회책임투자(SRI), 인권경영(BHR), 사회책임경영(RBC)은 사실상 동일하다고 볼 수 있겠다.
< 인권경영, 세상을 바꾸는 패러다임 >에서 발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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