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용산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의돈은 신문으로 얼굴을 덮고 코를 골고 있다. 대학생 차림의 청년이 흔들어 깨운다. '용산입니다, 형님' 선우일의 동생, 선우신이다. '개새끼들!' 서의돈은 눈에 핏발이 서서 시뻘겋고 험했다. 동경에 머물러 있던 선우신에게 서의돈이 노무자 꼴로 불쑥 찾아왔었다. 이삼 개월 신세를 져야겠다면서. 한데 며칠이 안 되어 관동대지진이 발생했다. 생지옥. 유언비어에 선동된 군중이 닥치는 대로 조선인을 참살했다. 유언비어의 근원은 일본의 위정자들이었다. 오천이 넘는 조선인들의 목숨 따위, 그들에게는 빈대로 보였을지 모른다. '신상, 신상!' 서울역에 내린 선우신을 안경 쓴 사내가 급히 불러댔다. 그의 뒤에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주춤거리듯 여자가 따라온다. 오가타 지로다. 여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