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없이' 살고 있다. 출근길 발걸음은 시간 없이 살고 있음을 직설적으로 보여 준다. 앞선 사람이 조금이라도 천천히 걸으면 '길막'의 한숨을 내뱉는다. 계단을 오를 때면 숨이 차오른다. 숨이 차오름을 느끼면서도 발걸음은 늦추어지지 않는다. 지하철이 도착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되뇌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종착에서의 안도감은 회색빛 감정을 일으킨다. 걸음이 빨라진 것처럼 말도 빨라진다. 대화는 되받기에 급하고 말은 기-승-합-승의 연쇄작용을 통해 부풀어 오른다. 거대한 말 덩어리에 눌려 화자들은 갑갑해하는 모양새다. 심지어 책을 읽는 눈동자의 움직임도 빨라진다. 기계적인 이해의 방식으로 책은 읽힌다. 이제 독서는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달음질하는 경주가 된다. 종착지에서 서둘렀다는 아쉬움이 일어나지만 되돌이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