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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글의 수정' 예

밭알이 2022. 2. 12. 13:57

  다음은 2014년 7월 8일 국무총리가 발표한 담화문의 한 단락이다. 이것이 못난 글인지 아닌지 알아보자. 밑줄 그은 곳을 특별히 의식하지 말고 우선 눈으로 읽어보라. 그다음에는 입으로 소리 내어 다시 읽어보라.

                              그동안 육상에서의 사회 재난과 자연 재난을 관장하는 부서가 각각 본부조직과 외청으로 이원화되어 있고, 해상에서의 재난은 해수부와 해경으로 분산되어 있어 재난 안전을 통합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육상과 해상의 재난, 사회 재난과 자연 재난을 모두 통합하여 국가안전처로 일원화하여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철저히 책임 행정으로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안전처가 하루라도 빨리 출범해야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한 획기적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눈으로 읽어서 무슨 뜻인지 금방 들어오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소리 내어 읽어보니 어떤가. 눈으로 볼 때보다 나은가? 오히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담화문이다. 국무총리는 소리 내어 읽고 국민은 귀로 들으라고 쓴 글이다. 그런데도 입에 착 감기지 않고, 귀에 쏙 들어오지 않으며, 뜻을 바로 알기도 어렵다. 잘못 써도 크게 잘못 쓴, 못나도 한참 못난 글이다.
  이 담화문을 읽기 편하고 듣기 좋으며 뜻도 쉽게 전하는 문장으로 고쳐보자. 그러려면 흉한 곳을 찾아야 한다. 이제 밑줄 그은 부분을 보라. 읽기가 힘들고, 듣기에 어색하고, 뜻이 분명하지 않은 곳에 밑줄을 그었다. 어려운 중국 글자말, 일본말, 서양말이 즐비하다. 필요 없는 군더더기가 곳곳에 있다.
  '육상' '해상' '관장하는' '이원화되어' '통합적으로' '일원화하여' '효율적으로' '획기적 변화'는 모두 한자말이다. 인용문은 겨우 세 문장뿐인데 '적'과 '화'가 붙은 한자말을 다섯 번이나 썼다. '적'도 그렇지만 '육상에서의' '이원화되어' '분산되어' '시작될 수'라는 말도 모두 일본말 조사와 수동태를 따라 쓴 것이다. '적'은 일본말 발음이 '데키'인데, 받침이 없는 일본말에서는 말의 운율을 살리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우리말로 하면 '쩍'이라는 된소리가 나는 경우가 많다. 입으로 내기에도 귀로 듣기에도 좋은 소리가 아니다. '본부조직'과 '외청'은 시민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관청말'이다. '각각'은 없어도 되고, '책임 행정으로 할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이다.
  글은 쓴 사람의 마음과 태도를 보여준다. 정부의 혁신 의지를 밝히는 담화문인데도 '할 것'과 '있을 것'이라는, 마치 강 건너에서 구경하는 듯한 표현을 썼다. 세 문장 모두 주어와 술어가 둘 이상 들어 있는 복문인데, 문장 전체를 아우르는 주어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주어가 없는 것은 당국자들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아래의 마지막 문장은 기본 중의 기본인 주술 관계가 맞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안전처가 하루라도 빨리 출범해야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한 획기적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문장 앞부분 주어는 '국가안전처'이고 뒷부분 주어는 '획기적 변화'인데, 앞뒤 모두 영어처럼 추상명사나 '무생물 주어'를 쓰다 보니 문장이 엉겨버린 것이다. 이런 여러 결함 때문에 이 담화문은 분명 우리말이지만 듣기에 불편하고 뜻을 알기 어려웠다.
  담화문을 고쳐 보았다. 남의 나라 말을 우리말로 바꾸고 군더더기를 없앴다. 어려운 관청말 대신 쉬운 말을 쓰고 문장 주술 관계를 분명하게 했다.

                              그동안 육지의 사회 재난과 자연 재난을 책임지는 부서가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으로 나뉘어 있고 바다의 재난 대처는 해수부와 해경으로 갈라져 있어서 정부가 재난 안전을 제대로 기획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책임과 권한을 모두 국가안전처 한곳에 모아 육지와 바다의 재난, 사회 재난과 자연 재난 모두에 더 잘 대처하고 철저하게 책임지는 행정을 하겠습니다. 국가안전처를 하루라도 빨리 출범시켜 획기적 변화를 시작함으로써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더 확실하게 보호하겠습니다.

  말로 해서 좋아야 잘 쓴 글이다. 독자가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기본이다. 기본을 지키기만 하면 최소한 못나지 않은 글은 쓸 수 있다. 여기에 나름의 개성을 입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면 훌륭한 글이 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1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