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자유와 권리 존중, 제한'에 대해
헌법 제37조
①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②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헌법에 기본권 조항이 없더라도 기본권 또는 인권은 보장된다. 민주주의의 원리, 헌법의 이념에 기본권 보장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자로 쓰여진 성문헌법이 없더라도, 민주주의 국가 형성과 운영의 근거가 되는 원리로써 헌법은 당연히 존재하고, 주권자가 국민이란 사실을 바탕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의 보호와 보장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헌법은 국민의 권리 보호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수십 개의 개별 조항을 나열했다. 나름대로 빠뜨림 없이 열거하고자 한 결과다. 헌법의 기본권 조항을 간략하게 줄여야 한다면, 어떤 조항을 마지막까지 남겨두어야 할까?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정도가 아닐까? 또한, 헌법전을 한 권의 책처럼 만들 수는 없다. 강조해야 할 권리가 새롭게 발견될 때마다 헌법을 개정하기도 곤란하다. 그런 까닭에 이 조항을 덧붙였다. 모든 권리를 포괄하고도 남음 직한 앞에 든 세 개의 조항 외에 수십 개의 개별 조항을 덧붙였지만, 그래도 혹시 빠뜨렸을지 모르는 권리를 위해 마련한 조항이다.
새롭게 발견한 자유와 권리도 헌법적으로 보장해야 할 기본권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면 똑같은 가치를 부여하겠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자기 정보의 자기 결정권을 생각할 수 있다. 손가락의 지문도 자기 고유의 정보다. 누구나 그 정보를 어디에 어떻게 제공하고 이용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주민등록카드를 만들 때 열 손가락의 지문을 채취하여 관공서에서 보관하는 행위가 자기 정보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제한이 가능하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견해다. 인권이든 기본권이든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에 따라 그리고 생활양식의 변천과 우리 생각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질 수 있다. 헌법 제37조 1항은 인권의 역동적 개념에 맞는 자유와 권리 보장을 위한 탄력적 조항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유인이다. 누구나 그렇게 알고 있고, 설사 현실이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인간은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자유로운 개인과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이중적 지위에 서게 된다. 인간은 공동체의 질서 속에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누려야 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공동체는 인간에게 속박인가, 아니면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무대 혹은 환경인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으려면 공동체의 질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제한이 불가피하다. 단지 어느 정도의 제한이 적정한가라는 문제만 남을 뿐이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헌법에 의한 제한과 법률에 의한 제한이다. 헌법에 의한 제한을 헌법 유보, 법률에 의한 제한을 법률 유보라고 한다.
헌법 유보의 예는 제8조 정당의 해산, 제21조 명예 훼손 금지, 제23조 재산권의 제한 등이 있다. 제37조 2항을 일반 유보 조항이라고 하는데 이 조항으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목적이 분명해야 하는데, 반드시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이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한 것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구체적 법률을 잘 따지는 수밖에 없다. 그 다음으로 반드시 법률을 만들어 제한하되, “필요한 경우”에만 해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때’란, 기본권을 제한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공의 이익이 아주 중요한 때라는 의미로 알면 된다. 아무리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핑계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여 얻는 공적 이익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면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기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정신이 담겨 있어서, 이 요건을 흔히 과잉 금지 원칙 또는 비례 원칙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시민들이 느끼기에 국가는 공익을 위한 명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개인의 불편함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 정당하고 꼭 필요한 경우라 하더라도, 그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기본권에는 마치 핵심과 같은 부분이 있어, 그것만은 절대로 제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부분이 본질적인 내용이란 말인가? 아무도 본질적 내용이 무엇인지 자신 있고 명확하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현실의 현상에 민감하고 좀 깊이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선뜻 “이것이 본질적 내용이다”라고 나서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구체적으로 따져 판단할 수밖에 없다. 헌법의 이 조항이 훌륭한 장식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1972년 유신헌법 때 폐지되었다가 1980년 개정 때 되살려진 역사적 과정을 보면 이런 조항이 전혀 쓸모없지만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기본권을 얕보는 무도한 권력에 맞서서 싸울 때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본질적 내용을 건드리지 말라”고 소리쳐 엄중히 경고할 수 있을 테니까.
< 지금 다시, 헌법 >에서 발췌요약
전공의 63% 병원 이탈…정부 “의사 기본권? 국민 생명이 최우선” - 시사저널 (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