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얻게 된 기후위기에 대한 교훈
2020년 5월 한국기후변화학회 전문가들은 신종 감염병이 기후변화와 연관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77퍼센트가 '관련 있다'고 대답했다.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중복 답변 가능), 1위로 환경파괴(66퍼센트), 2위로 기후변화(51퍼센트)를 꼽았다. 도시화, 지구화, 공장식 축산이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기후위기에 관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선, 기후변화가 직간접적으로 천의 얼굴을 한 현상이라는 점이다. 겉으로는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현상들이 기후변화를 매개로 은밀하게 연결된다. 기후위기는 팬데믹, 온갖 질병, 정신질환, 자살, 자해, 범죄, 전쟁, 작황, 아동 발달, 농어업, 경제 등 인간사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친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기후위기의 전체 양상에 눈뜰 기회를 주었다.
둘째, 팬데믹과 기후변화가 인간이 초래한 '인재'의 거대한 인과관계 그물망 속에서 연결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환경단체 녹색연합이 일반 시민을 상대로 2020년 9월에 실시한 조사(중복 답변 가능)에서, 응답자들은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느끼게 된 계기로 2020년 여름의 폭우(73.9퍼센트)와 코로나19(49.5퍼센트)를 꼽았다.
셋째, '인재'의 근본 원인을 인권의 눈으로 따져야 하는 점이 드러났다. 화석연료 기업, 막개발과 환경파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탄소 자본주의, 공장식 축산 등의 요인을 인권침해의 뿌리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요인을 통제할 의무가 있는 국가에 인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사생활 침해, 불평등한 피해, 소수집단을 소외시키는 방역, 경제사회적 악영향, 행정의 미비점 등을 인권문제로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넷째, 코로나19는 재난이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것 같지만, 그것의 악영향은 '차별적'임을 보여주었다. 사회의 약한 고리에 속한 계층에게 코로나19는 직격탄이 되었다. 또 기존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촉발제가 되었다. 바이러스 사태는 재난의 사회적 차원을 우리에게 각인했고, 이 점은 기후위기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다섯째,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것처럼 기후위기가 복합적이고 연계적인 방식으로 인간 사회에 영향을 준다면, 그것에 대한 대응 역시 복합적이고 연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흔히 온실가스 감축을 기후대응의 최고 목표로 둔다. 물론 탄소 '배출 순 제로' 더 나아가 '배출 제로'는 기후대책의 최우선 과제다. 그러나 인류가 직면한 거대한 인과의 그물망, 즉 환경파괴, 생물다양성 감소, 6차 대멸종, 육식과 식량 생산을 포함한 먹거리 문제, 정치사회 시스템의 리스크 등을 함께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탄소 감축과 에너지 전환만 이야기하면 자칫 나무만 보고 숲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사태는 정치적 의지와 공동체의 합의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일도 실행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조처들-사회적 거리두기, 재난지원금 등-을 이제는 상식선에서 받아들였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녹색 전환의 과제 역시 가능성의 범위 내에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대응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는 코로나19뿐 아니라 기후위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 경제 체제, 정치, 국익 추구 등 여러 이유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차원의 이유는 지금까지 소홀하게 취급되었다. 이제 사회적 차원으로 '탄소 사회'를 개념화하고 규정할 필요가 있다.
탄소 사회란 탄소 자본주의의 논리와 작동방식을 깊이 내면화한 고탄소 사회체제를 뜻한다. 탄소 사회는 생산, 소비, 그리고 인간의 내밀한 의식까지 지배하는 달콤한 중독의 체제다. 다른 한편으로, 탄소 사회란 탄소 자본주의에서 파생된 불평등이 전지구적으로 그리고 한 나라 내에서 깊이 뿌리내린 사회 현실을 뜻한다. 탄소 사회는 팍팍한 고통의 체제다.
달콤한 중독과 팍팍한 고통, 이러한 이중적 탄소 사회와 단절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기후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 인권은 그런 길을 찾을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한다.
이와 비슷하게 기후위기를 사회적 관점으로 보아야 할 이유가 또 있다. '지속불가능성의 해체'라는 목표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해도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받아들이고 싶어도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그것을 강제로 시행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기후행동을 통해 전 사회적인 전환을 이루려면 사람들에게 전환을 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사회적 전환 역량은 정신적, 물질적 차원에서 함께 작동한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사람이 초유의 고통을 겪고, 국가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직후에 전국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포스트코로나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인의 물질주의 성향이 변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조사자들은 코로나를 겪은 한국인들이 생태환경과 삶의 질, 공동체적 연대 의식을 중시하는 쪽으로 삶의 태도를 바꿨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상식적으로 온당한 가설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분배와 성장 중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성장'(43.6퍼센트)을 택한 사람이 '분배'(25.7퍼센트)를 택한 사람보다 더 많았다. '개인 간의 능력 차를 인정하고 경쟁력을 중시하는 사회'(61.1퍼센트)를 택한 사람이 '개인 간의 능력 차를 보완한 평등사회'(14.7퍼센트)를 택한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세금을 적게 내는 대신 위험에 대한 개인의 책임이 높은 사회'(50.4퍼센트)를 선택한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위험에 대한 사회보장 등 국가의 책임이 높은 사회'(22.3퍼센트)를 택한 사람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쟁과 자율' 그리고 '연대와 협력'간의 선택에 있어서 '경쟁과 자율'이 더 많이 나왔고, '경제적 성취'와 '삶의 질'간의 선택에 있어서도 '경제적 성취'가 더 높게 나왔다. 이런 응답은 2년 전 동일한 문항으로 조사했던 결과보다도 더 심해진 경향을 보였다. 즉, 한국인들은 코로나19와 같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미증유의 사태를 겪고 나서도 각자도생형, 경제성장 지향형 사회를 더욱 선호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런 결과는 기후행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 전환, 녹색 전환, 무한 경제성장 모델의 탈피, 지속불가능성 해체와는 정반대의 가치관을 한국인이 강고하게 유지하고 있음을 한번 더 각인시키다. 한국에서 기후행동이 더딘 이유가 정부의 정치적 의지 부족, 그리고 국민의 광범위한 성장적 경제관, 이 두 가지가 결합된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
< 탄소 사회의 종말 >에서 발췌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