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글쓰기 74

1부 5편 떠나는 자, 남는 자

행랑 쪽 모퉁이로 길상이 급하게 뛰어간다. 봉순이도 급히 걸어가고 김서방 댁도 엉기정엉기정 따라간다. 수동이 거처방에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수동이는 눈을 뜬 채 죽어있다. 조준구와 홍 씨는 속이 후련해지며 희희낙락이다. 불리해지는 현실 가운데 서희는 포악스럽고 의심이 많아지고 있다. 반면, 제 나이를 넘어선 명석함으로 사태를 가늠하는 냉정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봉순이는 길상을 깊이 사모하지만 길상은 봉순이를 피하는 것이 완연했다. 한편, 봉순이는 다른 꿈을 좇고 있다. 평생을 비단옷에 분단장하고 노래 부르며 사는 세상, 그곳으로 끌려간다. 한 번은 길상이 니 겉은 화냥기 있는 가씨나는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길상이는 후회했지만, 봉순이한테 깊은 상처,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주게 되었다. ..

6 함안댁의 죽음

"무신 보기 좋은 구겡거리가 났다고 이리들 서 있노! 영팔이 니 이리 오나! 거기 벅수(바보)겉이 서 있지 말고." 고함 소리에 뻗장나무같이 영팔이 앞으로 나서는데 얼굴은 평소보다 더 길어 보였다. 꾹 다문 입술이 삐죽삐죽 열릴 것만 같았다. 비에 젖어서 눅진눅진해진 새끼줄을 잡아 끊고 치마를 둘러쓴 시체를 윤보와 영팔이 끌어내린다. "아까운 사람, 엄전코 손끝 야물고 염치 바르더니." 방으로 옮겨지는 시체를 따라가며 두만네는 운다. "그러기, 매사가 야물고 짭찔터마는." 서서방의 늙은 마누라도 눈물을 찍어낸다. 옮겨지는 시체를 따라 사람들이 방 앞으로 몰릴 때 봉기는 짚세기를 벗어던지고 원숭이같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목맨 새끼줄을 걷어 차근차근 감아 손목에 끼고 난 다음 나뭇가지를 휘어잡으며 툭툭 분..

<파계> 요약

숨겨라! 백정은 남의 집 문지방 너머로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한다. 백정 집안은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지 않는 것이 예의다. 백정이라는 이유로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서 쫓겨날 수 있고, 여인숙에서도 쫓겨 날 수 있다. 백정은 보통사람과 같은 묘지에 묻힐 권리가 없다. 백정은 사람이 아니다. 백정은 사족, 네 발 달린 짐승이다! 주인공 세가와 우시마쓰는 백정이다. 아버지는 세상에 나가 출세하려는 백정 자식의 비결-유일한 희망, 유일한 방법, 그것은 오직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숨기는 것은 죽고 사는 문제다. 젊은 우시마쓰는 사범대학을 나오고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고 있기에 어떤 경우에도 이 소중한 훈계만은 깨뜨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노코 렌타로도 백정이다. 우시마쓰보다 이른 시기에..

9 두만아비의 아들 부탁

저녁이 끝나고 두만네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모깃불을 피워놓고 곰방대를 물고 있던 두만아비는 슬그머니 일어섰다. 삽짝을 나서려 하자 부엌에서 두만네가, "어디 가요?" 하고 물었다. "음." "밤이 저물어도 사돈이 오시믄 우짤 기요?" 그러나 두만아비는 아무 말 없이 나간다. 마을 정자나무 옆을 지나서 언덕을 올라간다. 외딴 언덕 위에, 윤보가 사는 초가의 모깃불이 보였다. "거기 오는 기이 누고." 윤보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나다." "나라니?" "이평이다." "짚세기나 삼을 일이지 머하러 왔노." 거적을 깔아놓고 마당에 누워 있던 윤보는 부시시 일어나 앉는다. "와 오믄 안 되나?" "우리 집이사 사통팔방이니께, 금줄을 칠라 캐도 삽짝이 있이야제. 산짐승도 오는데 사람 못 올 기이 머..

8 임이네의 출산

방 안에서 임이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녁이 좀 들어와야겄소." "내가?" "그라믄 우짤 기요? 이 차중에 아무도 없이 우찌 아일 낳을기요?" "내, 내가." "그, 그라믄 우짤 기요? 누구 자식인데 이녁이 그러요!" 화내는 소리에 용이는 더듬듯 마루를 올라선다. 방문을 연다. 문바람에 등잔불이 흔들렸다. 벽을 짊어지고 앉은 임이네는 무서운 눈으로 용이를 노려본다. 머리를 벽에 부딪으며 임이네는 소리를 질렀다. 진통이 오는 모양이다. "아이구우, 어매! 나 살리주소!" 두 손을 쳐들고 허공을 잡는데 이빨과 이빨이 부딪는 소리가 들렸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 이마에서 두 볼에서 구슬땀이 솟아나온다. 임이네는 앞으로 넘어져 오며 두 팔로 용이 정강이를 안는다. 여자의 팔은 쇳덩이같이 단단했다. 두 팔은 용..

1부 4편 역병과 흉년

나귀에서 내린 조준구는 뻣뻣하게 힘을 주며 목을 돌려 돌아본다. 뒤따르던 초라한 가마 두 틀이 멋는다. 가마 속에서 나온 여인은 삼십오륙 세쯤 돼 보이는 조준구의 부인 홍 씨였다. 안 오겠다는 것을 감언이설로 얼러가며 여기까지 데려왔다. 다른 가마에서는 사내아이가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데 창백한 얼굴에 눈은 무섭게 큰 꼽추였다. 조준구는 윤 씨 부인에게 생계가 막막하여 내려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윤 씨 부인은 뒤채에 머물게 한다. 이 무렵 김서방은 각 처에 있는 최참판댁 농토를 돌아본다. 올해 수확을 예상하기 위해서다. 소나기를 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햇볕은 쏟아지고 별안간 김서방 속이 울렁거린다. 마지막 행선지 용수골을 떠날 때는 속이 뒤집힐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최참판댁에 당도한 것은 밤이 이슥했을 때..

7 김서방댁의 입방아

날로 여위어가는 삼월이를 두고 김서방과 김서방댁이 한밤 중에 대판으로 한번 싸웠다. 불을 끄고 자려는데, "그눔우 가시나 지 푼수에 그 양반 소실 될라 캤던가? 쇠는 짧아도 침은 질게 뱉는다 카더마는, 지 주제에 돌이나 복이나 끼어 맞추어 주는 대로 기다리고 있일 일이지, 낯짝 반반하다고 넘친 생각을 한 기지." "허 참 시끄럽거마는, 잘라 카는데." 김서방은 이불 속에서 혀를 두들겼다. "아 내 말이 그르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치다보지도 말라 캤는데, 사나아들이사 열 계집 싫다 하까? 그 생각을 못하고 지 신세 지가 조졌지." "이 소갈머리 없는 늙은 것아! 삼월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그저 말이라믄 사죽을 못 쓰니께 어이 그만." 김서방은 돌아누웠다. "와요? 이녁 무신 상관 있소?" "......

1부 3편 종말과 발아

지리산으로 되돌아온 최치수는 달포 가량 산속을 헤매어 발 안 닿은 곳이 없었지만 구천이를 찾지 못했다. 구천이, 환이는 우관선사를 찾아 연곡사로 갔다. 무서움에 질린 별당아씨는 거의 발광 상태에 있었다. 최치수는 몇 차례 더 산에 갔다. 처음 흘러나오는 구천이에 대한 얘기는 시일이 지나자, 누구에게서도 들려오지 않고 사그라들었다. 강포수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최치수에게 귀녀를 달라 사정한다. 이튿날, 일행은 사냥에 나서는데, 강포수는 말이 없고 휘청거린다. 노루를 사냥하려는 와중에 소 만한 산돼지가 시야에 들어오고, 총을 쏘았으나 선불이 돼버린다. 산돼지는 방향을 돌려 달려오는데 비명이 나고 수동이의 찢긴 바지 사이에서 분수같이 피가 치솟고 있었다. 강포수는 수동이 부상당한 일보다 명포수인 그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