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깐이 집의 국밥, 무를 엇비슷이 썰어 넣고 끓인 생대굿국이다. 석이 입에 쫄깃쫄깃한 대구 살이 달다. 젖 빛깔이 방울방울진 고기는 입속에 들어가기가 바쁘게 녹는다. 향긋한 생파 내음, 사발의 바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발을 기울이며 남은 것을 아쉽게 퍼올리는 석이 모습을 여자는 멸시의 눈으로 힐끗 쳐다본다. 눈살을 찌푸린다.
"아지마씨."
"예."
"물지게꾼이 내놓는 국밥 값은 썩은 돈이오?"
"무슨 말을 그렇게."
느닷없이 하는 말에 여자는 당황한다.
"똑똑히 들으시오, 각시. 그렇지 두만이 각시믄, 작은 각시든 큰 각시든 각시는 각시니께로."
"아니."
얼굴이 벌게진다.
"보소 서울각시, 각시 씨애비 씨에미 그라고 서방도 다 그렇기 누데기옷을 입고 살아왔소. 그거는 그렇다 치고 또 니는 머꼬? 술판이나 닦는 계집 푼수에 누굴 보고 괄시하고, 차벨할 개뿔이나 있다 그 말가?"
뒤에 가서는 주저 없이 반말을 뇌까린다. 여자의 말문이 막힌다. 약은 여자다. 시비를 걸려고 별러 하는 수작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면천한 처지로서 오늘 이만큼이나 살게 된 것을 이웃사촌이더라고 맴이 안 좋을 까닭이야 없제. 멩색이 서방이나 씨동생이나 모두 잘 아는 사이고 보믄 또 고향 있을 적에는 부모들도 형제겉이 지낸 사정이고 보믄 작은 각시든 큰 각시든 간에 남과 같이 돈을 받더라도 생각은 좀 달라얄 긴데, 누구 동냥 온 줄 알았던가?"
"제가 어쨌기에 이리 화를 내실까?"
여자는 누구러진다.
"그거야 가심에 손 얹어보믄 빤히 알 일 아니던가? 예사 별수도 없는 것들이 사람을 괄시하는 법이라. 앵이 꼽아서."
그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석이,
"머를 그러요. 그만 나갑시다."
"임마! 니는 가만히 있어라. 아무튼지 간에 보소, 서울 각시. 김두만을 따라 살라 카믄 그 고만 떠는 버르장머리부터 고치얄기요. 김씨네 부자가 자리 꼽재기(구두쇠)로 소문나 있기는 하지마는 경위에 틀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닌께. 더군다나 두만이는 색에 반해 부리는 얼간이도 아니고."
서울댁은 움찔한다.
"서울서는 어느 대가댁 기출인지 각시 근본이야 알 턱 없고 영만어매나 두만이 댁네는 다 심성 곱고 후덕한 사램인데 앞으로 조심하는 기이 좋을 기구마. 좋지도 않은 소리 귀에 들어가 봐야 큰며느리만 싸고도는 시부모 심사에 부채질일 기고 두만이도 역성들 사람은 아닌께, 내가 이래 봬도 입이 싸고, 등쳐서 간 내묵는 솜씨도 노름판에서 자알 익힌 터이라,"
슬쩍슬쩍 급소를 찔러놓고 관수는 일어선다.
"석아 가자."
셈을 하고 밖에 나온 관수는 바람에 날려버리듯 침을 뱉는다.
*앵이꼽다 : 아니꼽다. 하는 말이나 행동에 눈에 거슬려 불쾌하다. 애잉곱다.
토지 6권 305쪽 발췌
'요약글쓰기 > 토지 속 인생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 서희와 봉순이의 해후 (0) | 2022.07.10 |
---|---|
17 관수의 불손함과 꾸짖는 혜관 (0) | 2022.07.03 |
15 서희와 길상의 다툼 (0) | 2022.06.22 |
14 서로 의지하는 용이와 영팔이의 헤어짐 (0) | 2022.06.22 |
13 목수 윤보의 죽음 (0) | 2022.06.06 |